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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독립군 Financial Ré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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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규형을 만나고 집으로 가기전 머리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복잡한 생각에 무작정 남산을 걸어 올라왔다. 남산타워 한 구석에 노트북을 꺼내 내 생각을 주저리 써보고자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인생은 성장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뉜다고. 태어나서부터 학교를 통하여 사회에 나오기까지를 성장기로 본다면, 사회에 자리잡고 은퇴하기 전까지의 삶은 중년기라고 볼수 있다. 나 또한 인생의 2막인 중년기의 삶에 접어들었다. 오랜 유학생활 끝에 자리잡은 뉴욕의 회계법인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꿈의 직업은 아니였다. 그저 좋은 기회와 좋은 환경에 남들보다 빨리 자리잡고 싶은 욕심에, 열정과 업무적인 부분에서 타협을 본 선택이였다. 취업에 용이한 일을 찾기위해 대학에서 회계와 금융을 전공했던 나의 선택의 연장선이였다. 회계..
사람마다 살다가 보면 적게는 또는 많게 후회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 후회하는 순간들은 그 선택과 행동을 할 당시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갔다가 시간이라는 이자가 더해져서 돌아온다고 느낀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이따금 머리와 가슴에 영화 필름의 한 장면처럼 스멀스멀 올라와 가슴을 찔러대곤 한다. 나 또한 자랑스럽지는 않은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순간들은 나의 실수, 나의 상처에 관한 것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 차갑게 대했을 때 나타났던 거 같다. 내 오만과 아집,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경멸 속에서 나온 내 행동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갔을 거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오늘이 나에게 그런날인거 같다. 신이 있는지 나는 아직 완전한 믿음은 없지만, 신이..
10년 전 이 무렵, 군대를 막 전역하였던 2013년 여름, 나는 디톡스를 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내 입맛대로 사 먹던 냉동식품/불량식품은 여드름과 함께 내 피부를 탁하게 만들었으며 외형적으로 또한 살이 많이 쪄있었던 기억이 난다.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로 나오게 되면서, 나도 관심받고 싶은 욕구에 본격 다이어트와 외모관리에 들어갔었다. 그 마음의 종착지는 디톡스였다. 당시 부모님이 한의사인 사촌형에게서 선물로 받은 한방 디톡스 상품이 있었다. 이 상품은 몸속의 독소를 배출한다는 명목으로 삼시세끼를 포도주스 맛이 나는 한방즙과 소금 없는 식사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창 사회에 나와 열정이 넘치던 나는 살과 미용을 위해서면 무엇을 못하랴라는 생각으로 아래와 같은 식단을 한 달간 먹었었다. 아침: 두부와 ..
2023년이 시작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2022년에는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내가 뜻하였던, 뜻하지 않았던 변화들 모두 있었다. 고백하자면 2022년 한해는 전반적으로 내 삶이 컨트롤속에서 벗어나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와도 마냥 좋지않게 헤어졌다. 건강도 악화되었었고, 내 감정들도 내 컨트롤에서 벗어났었다. 그 변화들 속에서 나는 내 선택이 아닌 남의 선택과 기대에 이끌려 다녔다. 그래서인지 2022년 마무리는 마냥 기분 좋지 않은 마무리였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2023년은 다르게 해보고자 한다. 더 이상 물흐르듯 시간을 쓰지 않고, 작지만 차근차근 다시 내가 원하고자하는 것들을 다시 세워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이글을 계기로, 아..
https://youtu.be/cRsJHlK1gbw 오늘은 힙합을 들으면서 글을 작성했다. 플레이리스트는 위에 공유하고자한다. 인플레이션 Inflation 이라는 종착지로 여행 90년대 이후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래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는 경제 수업에서나 주로 들어볼 법한 단어였다. 그만큼 오랫동안 우리는 세계화라는 트렌드 속에 유례없는 전 세계 호황을 누렸고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소리 없는 도둑을 맞이할 일이 오랫동안 없었다. 미국 같은 경우 70년대 중동발 오일 쇼크에서 시작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 (Stagflation)은 세계화의 질서를 재편 이루었고, 이 스태그플레이션은 중국에게 기회, 혹은 부의 재분배를 제공했다. 중국은 미국에게 저가의 노동력과 공산품을 제공함으로써 기축통화를 가지..
변화는 언제나 즐겁다? 변화는 언제나 즐겁다. 항상 스스로한테 변화는 좋은것이라며 되내이듯 주문을 걸지만, 거주지의 변화는 언제나 달갑지만은 않다. 갑자기 받은 프로젝트처럼, 이사해야함을 자각 한순간부터 빠듯한 데드라인을 두고 여러집을 저울질해야함은 일상의 숙제가 되버리고, 쉬는 시간에 인터넷에서 렌트 매물을 살펴보는건 어느새 일과가 되버린다. 하루가 다르게 정리되어 쌓여가는 이사짐들은 안전함과 완전함이 갖춰져있던 나의 공간에서 변화와 불완전함 속으로 들어갈 때임을 알린다. 그래서 참 아쉽다. 무엇보다도 정들었던 동네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묻어있는 추억과 스토리들을 접어두고 인생의 다음 장 (Chapter)으로 넘어가야한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무엇이던끝은 아쉬운거 같다. 간략한 소개를 하자면, ..
분노. 어릴 적부터 떠나온 타지 생활/유학 생활에, 내 세상은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고독한 홀로 서기가 길어질수록 나는 거칠어져 갔고 비관적으로, 반쯤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불합리하다고 느낀 중학교 시절과 한없이 외로웠던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내 안에 분노 자리 잡았으며, 대학시절에는 이 응축된 분노의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성장의 짜릿함 또한 맛본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분노를 통해 세상 모든 걸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거 같았고, 이러한 오만과 함께 나는 점점 분노/화의 기운에 잠식되었다. 대학 졸업 후, 뉴욕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나는 여전히 분노가 주된 원동력이었고, 분노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아드레날린을 통해 나 스스로를 태우면서 살아갔다. 어떤 이들에겐 별 의미 없는 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