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군 Financial Résistance
2023년 1월 22일 (01/22/2023) - 디톡스 본문

10년 전 이 무렵, 군대를 막 전역하였던 2013년 여름, 나는 디톡스를 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내 입맛대로 사 먹던 냉동식품/불량식품은 여드름과 함께 내 피부를 탁하게 만들었으며 외형적으로 또한 살이 많이 쪄있었던 기억이 난다.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로 나오게 되면서, 나도 관심받고 싶은 욕구에 본격 다이어트와 외모관리에 들어갔었다. 그 마음의 종착지는 디톡스였다.

당시 부모님이 한의사인 사촌형에게서 선물로 받은 한방 디톡스 상품이 있었다. 이 상품은 몸속의 독소를 배출한다는 명목으로 삼시세끼를 포도주스 맛이 나는 한방즙과 소금 없는 식사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창 사회에 나와 열정이 넘치던 나는 살과 미용을 위해서면 무엇을 못하랴라는 생각으로 아래와 같은 식단을 한 달간 먹었었다.
아침: 두부와 땅콩 한줌
점심: 샐러드, 골드키위, 그리고 사과
저녁: 브로콜리, 토마토, 블루베리, 바나나를 갈아 만든 야채주스
무슨 열의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나는 한 달간 정말 위의 식단을 유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를 갈망하던 군대에서 응축되었던 열정과 새로운 환경/사회에서 잘해보고 싶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을때도 위의 식단으로 도시락을 싸갔으며, 미소금융에서 인턴할 때 마저 점심때 도시락을 싸서 식단을 지켰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함께 일하던 직원분들은 내가 도시락을 먹을때마다 본인들이 먹는 음식을 권할때가 많았지만, 당시에 나의 열의는 대단했는지, 정말로 한달간 저 위의 식단을 꾸준히 그리고 철저히 유지했었다.
식단을 실천한 지 한 달 후부터는 정말로 변화가 생겼었다. 몸이 가벼워졌고, 외형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었었다. 칙칙하고 하던 피부는 새하얘졌고, 덕지덕지 붙어있던 여드름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몸무게도 눈에 띄고 줄었으며 주변서 심지어 말랐다는 이야기마저 들었었다. 앞에 변화를 토대로 나는 외모에 한결 자신감이 생겼었으며 당시에는 나 스스로가 정말 내가 만족스러웠다고 느꼈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변화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멈추거나 끊어내야 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극단적으로. 끊어야 할 것이 내가 경험했던 나쁨 음식이 될 수도 있고, 넓게는 내가 행하는 행위/생각 그리고 만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끊어내는 이 행위를 디톡스 (DETOX)라 칭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 만 31살인 지금이 10년 전 군대를 전역했던 그 시점처럼 디톡스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 든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의 내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내가 디톡스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얘기해 보고자 한다.
호의/호감과 기대
돌이켜보면 나는 이유 없는 호의와 기대를 많은 사람들에게서부터 받아왔다. 대학교와 커리어 초기 공격적으로 살아가던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사는 뉴욕이라는 지역 또는 종사하는 직장/커리어를 보고, 아니면 그저 내가 꾸며낸 그리고 내가 남들에게 비치고 싶던 내 모습을 통해서 사람들은 쉽게 그리고 막연하게 나한테 호의와 기대를 주었었다. 어찌 보면 별 이유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줬었다고 생각되고 참으로 감사하다고 지금은 느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수용할 수준의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나에게 쉽게 베풀던 호의와 호감 그리고 막연한 기대는 이내 내 안에서 당연함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감사함을 잃어갔다. 감사함을 잃은 나에겐 모든 것이 당연해지고 오만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우월감에 도취되기 시작했으며 말도 안 되게 자아만 강해졌다고 고백한다. 내게 쉽게 주어진 호의, 호감 그리고 기대는 금세 내 안에 오만이라는 독이 되어 자리 잡아갔다. 어느 순간 나는 세상을 향한 Giver가 아닌 Taker이 되어가고 있었다.

겸손과 인내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해보면 20대 시절엔 정말로 치열하게 살았다. 당시엔 절박함과 불안감을 바탕으로 내 자신에게 실패를 용인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20대는 큰 실패 없이 전반적으로 평탄하게 살아갔다. 내 노력에 따라 나오는 좋은 결과들은 이내 내 모든 성공이 오롯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아집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백한다. 그리고 그 아집이 자리잡기 시작함과 함께 나는 겸손과 인내를 잃어갔다. 언제든지 내가 노력하면 할 수 있지 하는 막연하고 오만한 생각으로 나는 겸손하지 못했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성공들을 기준 토대로 삼아 남의 노력을 폄하하고 타인에 대하여 인내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더 포장할수록 내 안의 겸손과 인내는 반비례하듯 줄어갔다.
사실 10대 때나 20대 때나 그리고 지금이나 나는 같은 놈이다. 오히려 본질적인 부분들은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다고 느낀다. 다만 차이는 살아가는 그 시점과 시절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절박함과 불안감이 달랐고 그 절박함과 불안감이 행동으로 나왔던 것이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참 어리석게도 그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아집만 키워나갔다. 그리고 이 아집은 이내 내 안의 독이 되었다.

디톡스 (DETOX)
나는 지난 몇 년간 붕떠 있다는 느낌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그 당시에도 그랬고 꽤나 최근까지도 그 느낌과 기분이 뭐인지 그 원인이 뭔지 당최 몰랐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진정한 나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누리고 있음에 나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이었다고 회고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간 한국서 쉬면서 지낸 이 기간은 내게 디톡스의 시작과 같았다. 마치 거품 빠지는 주식처럼, 또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겨울나무처럼. 예전처럼 사람을 만나는데 쉽게 호감을 사기도 쉽지 않았고, 별 노력 없이 관계를 이어가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내 속에서 나 스스로를 더 이상 과거처럼 포장하고 우월감에 자아도취될 수 없었다. 내 아집은 오만함은 부서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세상에는 쉽게 주어진 것은 없고 그리고 당연함은 더더욱 없다는 걸 강하게 상기시켜줬다. 삶에 선물처럼 다가온 커리어, 좋은 인간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삶의 행복까지도 내 마음속에 감사함과 겸손 그리고 인내가 없다면 영원한 것은 없다고 느낀다. 내가 잡고 이어가고 싶어 하는 것 모두 (직장, 친구, 연인, 가치관 등등) 모두 감사함과 겸손 그리고 인내가 노력이라는 행동으로 발현되어 내 삶에서 유지되고 지켜지며 발전해 나간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감사함, 겸손, 인내가 사라진 자에겐 관성의 법칙처럼 지켜나갈 수 없다고 느낀다.
예전 디톡스를 통해 만족스러운 나를 찾았을 때처럼, 이 글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오만함과 아집으로부터 디톡스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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