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독립군 Financial Résistance
차가웠던 순간들 본문

사람마다 살다가 보면 적게는 또는 많게 후회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 후회하는 순간들은 그 선택과 행동을 할 당시에는 미처 모르고 지나갔다가 시간이라는 이자가 더해져서 돌아온다고 느낀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이따금 머리와 가슴에 영화 필름의 한 장면처럼 스멀스멀 올라와 가슴을 찔러대곤 한다.
나 또한 자랑스럽지는 않은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그 순간들은 나의 실수, 나의 상처에 관한 것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 차갑게 대했을 때 나타났던 거 같다. 내 오만과 아집,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경멸 속에서 나온 내 행동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갔을 거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오늘이 나에게 그런날인거 같다.
신이 있는지 나는 아직 완전한 믿음은 없지만, 신이 있다면 오늘같이 이 후회하는 순간을 깨닫게 되는 날이 신이 내게 뭔가 가르침을 주려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의 기분과 생각, 그리고 이 가슴아픔을 잊고 싶지 않아 이 글을 주저리주저리 써본다.
오늘 문득 아침을 먹고 카페로 향하는 길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그 귀여운 길 고양이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뉴욕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를 이 글에서는 R이라고 부르겠다. R이라는 친구와 나는 코로나 기간 동안 급속도록 친해졌고, 이내 R은 나랑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내 자취방을 가득 채운 R의 짐들은 이내 우리를 같은 동네에 아파트로 이사가게 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공식적인 룸메이트가 되었었다.
R은 참 밝은 친구였다. 알고보면 상처와 슬픔이 참 많은 친구였는데, 남을 대할 때는 그 누구보다 밝은 모습으로 대하려 했다고 기억한다. 나는 그런 R의 모습이 참 좋았다. 종종 푼수에 가깝다고 느껴질 듯한 순진함, 기쁨과 슬픔의 기분을 전혀 숨기지 솔직함, 그리고 그 해맑은 웃음까지도. 내가 가지지 못한, 내가 담지 못한 모습이라 느꼈는지 나는 참 그런 R의 모습이 좋고 끌렸다. 이런 순수한 모습 때문인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하는 나와는 달리 어디서든 잘 섞이고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도 금세 호감을 샀다. 사람 관계를 참 잘했기에, 그렇기에, R은 음식점이건 카페건 새로운 사람과 접해야 할 때면 언제나 나의 대리인 역할을 했었다. 나는 그런 R이 참 좋았다.
그 이면에는 내가 상상도 못하는 많은 아픔과 상처들을 R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면 때문인지, 항상 나는 R을 길고양이 같다고 내심 생각해 왔었다. 엄격한 부모님과 어려웠던 과거 이성관계 속에서 밝은 연뒤 어두운 면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던 R은, 길고양이처럼 잘해주는 사람에겐 한없이 밝았지만, 반면에 위협과 압박으로 느끼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와의 관계가 그래서 많이 힘들었었다. 서로 잘 지낼 때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고양이처럼, 한없이 우리는 잘 지냈지만, 현실적인 문제와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할 때면 R은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당시의 나는 R과 많이 달랐다. 철저히 현실적으로 살려 노력했고,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당시에 나는 돈이라는 물질에 노예같이 사로잡혀 살았었다. 나는 성공에 목이 말랐었고 당장 눈앞에 결과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었다. 내게 돈은 학생에게 성적과 같았은 존재였으며 애인에게 바라는 사랑과 관심 같은 대상이었다. 너무나 원하지만 가지지 못한, 잡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생활과 결정, 행동 등 모든 것은 당시 돈이라는 기준으로 선택하며 살았었다. 조금 더 돈을 버는 직장, 조금 더 돈이 덜들 아가는 집, 그리고 조금 더 가성비가 좋은 제품과 음식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산다는 변명으로 나 스스로를 돈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어 살았었다. 그리고 나와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R은 나와 이런 부분에서 많이 달랐다. 돈보다는 삶과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었었고, 종종 그 도가 지나쳐 무책임하다고 느껴질 만큼 돈을 대할 때도 있었다. 한 예로 R은 소비에 있어서 무척 충동적이었다. 소득에 비해 넘쳐나는 쇼핑과 배달음식들, 비싼 물건들을 쉽게 잃어버리는 모습들, 그리고 나와 함께 내야 하는 집 렌트비를 놓치는 모습들 등. 당시의 나는 인간적인 장점이 많은 R에게서 이 부분을 무척 싫어했다. 돈을 경시한다고 여겼으며 그걸 기준 삼아 다른 좋은 점들마저 폄하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뉴욕에서의 우리의 룸메이트 생활은, 추억할만한 행복한 추억도 많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많아졌던 거 같다.
일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나는 집에서 겪는 R과의 갈등이 나의 내적 평안을 깨트린다고 어느 순간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질러져있는 집 모습, 밤마다 마시던 도수 높은 술들, 그리고 나에게 밀려있는 렌트비. 여러 번 고쳐달라 부탁을 했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에 나는 R에게 내 기준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은연중에 점점 룸메이트 관계를 끝낼 생각을 했다.
집 계약이 6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 나는 R에게 고백했다. 더 이상 같이 함께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중대한 선언을 한 것인데, 나는 당시 매우 담담했다. 마치 이 모든 게 올 거를 알았다는 거처럼. 그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나만의 논리를 펼치며 같이 못살겠다는 이유를 열거했다. R은 많이 당황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랑 사는 게 편하고 좋기도 하였겠지만 여러므로 R은 혼자살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학교의 교사로 일하던 R의 월급은 뉴욕에서 살기에 한없이 부족했었다. 특히 나와 같이 살던 그런 집에 살기엔 더더욱. 6개월이 남은 시점동안 R은 여러 번 나에게 회유를 했었다. 하지만 한번 닫힌 나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더더욱 모질게 밀어냈었다. 그러면서 R의 불안은 점점 커졌갔다.
길고양이처럼, R은 그 상황을 위협으로 많이 느꼈던 거 같다. 집을 꾸준히 인터넷을 통해 찾고 짐을 정리해 가던 나와는 달리, R은 새로운 집도, 짐정리도 도통 진행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나는 사실 그런 모습에 당시 많이 질렸었다. 우리가 이사를 가기 일주일 전까지도 집이 안정해졌던 R은 극도록 불안해했으며,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내가 같이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국엔 R은 내가 리서치했던 많은 집들 중 내가 이사 가는 뉴저지, 나의 바로 옆동네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본인말로는 내가 그나마 가까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그곳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당시에 그런 말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이사 이틀 전까지도 R은 이삿짐센터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고용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서 R의 이삿짐도 같이 해결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는 당일까지도 짐을 다 싸지 못해서, R이 샀던 가구라던지 소중한 물품의 다수를 R은 챙기지 못하고 나갔다. 마치 마지막까지 그곳에 남고 싶다고 항전을 하듯이.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을 당시에 한심해하기만 하고 한없이 밀어내기만 했다.
이사를 하는 당일, 내짐을 나의 새 아파트에 옮겨놓고, 나는 다시 돌아와서 R을 도왔다. 위에 말했다시피 R은 다 정리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정리한 짐들을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함께 옮겨나갔고 마지막 남은 몇몇 짐들을 R과 나는 우버를 통해 옮겼다. 우리가 탄 우버는 강을 두 번 건너 R의 새로운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Hudson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던 그 아파트는 그날따라 춥고, 강 건너 보이던 맨해튼의 야경을 그날따라 눈부셨던 걸로 기억한다. 우버에서 짐을 다 내리고, 몸마저 내린 R은 그 자리에서 흐느끼면서 울었다. 정말로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건 생전 처음 볼정도로. 나는 말없이 얼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다 R이 자초한 거라 생각하고 감정에 동요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잘 지낼 거라고 위로되지 않은 위로를 건넸지만 R은 계속 고개를 저었었다.
그러고 9개월이 지났다. R과 나는 그 후로도 여러 번 만나고 R은 이사 간 집에서도 또 한 번의 힘든 이사를 경험하고, 이제는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9개월이 지난 이 시점, 아침에 본 길고양이는 나에게 잊고 있었는 줄만 알았던 그날의 울고 있던 R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끝내게 하였을까 하는 방법적인 고뇌보다, 그저 그 울고 있는 R의 모습이 마음 한편에 후회로 진하게 남았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그렇게 울었다는 게 내 마음 한편을 강하게 시려오게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대해줄걸 하면서 오늘따라 떨떠름하게 느껴지는 커피를 마시며 이 생각에 깊게 잠겼다. 한없이 나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던 R에게 나는 그 누구보다 차가운 끝을 선물했었다. 그렇게 내 삶에 왔던 귀여운 고양이는 내 품에서 다시 길거리로 내보내졌다.

'독립운동가의 잡학노트 > 독립운동가의 회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롱시티를 떠나며 (0) | 2022.04.13 |
|---|---|
| 사랑을 찾아서 (1) | 2022.03.26 |